미술관 자작나무숲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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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난전시: 최건홍 초대전 '江原道-그 길을 따라서-' 2013.06.27 ~ 09.03


- 독 백 -

때로는 마음이 허하고 ‘사는 게 이게 아닌데’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길을 나서면, 자주 찾는 곳이 선자령 가까이 대관령 옛 길입니다. 봄이면 봄, 여름은 여름대로 계절에 따라 얼굴을 달리해서 반겨주는 그 길은 우선 언제나 호젓해서 좋습니다.
설핏한 가을 햇살이 고운 단풍 사이로 순하게 녹아내리고 어느 모롱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비단 목도리처럼 부드러워서 어느새 젖었던 마음이 뽀송뽀송 가을 햇살을 닮아 “뭐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”

오래된 나무뿌리가 바깥으로 뻗어서 얼기설기 뒤엉킨 사유의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군데군데 선인들의 발자취와 조우하는 기쁨이 따르고 시공을 초월한 고요는 잠시, 스산한 마음을 비우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.
날다람쥐 한 놈이 잉여수확물을 땅바닥에 부지런히 파묻다가 인기척에 깜짝 놀라 나무 위로 날렵하게 몸을 숨깁니다. 녀석, 나는 너를 해코지할 맘이 추호도 없는데 사람이란 동물은 도무지 믿을만한 존재가 못되나니 어쩔 수 없고, 놈의 기억력이 오락가락한 게 큰 다행인 것은 가을에 묻은 알갱이를 겨울에 어김없이 찾아 먹어치우면 참나무가 이토록 울창하지는 못했을 뿐만 아니라 놓친 알갱이는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녀석의 새끼들이 영영세세 먹을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도토리를 생산할 터이니 자연의 섭리란 이래서 오묘하다지.

지나온 삶을 대충 반추해보면,
명성을 얻은 바 없고, 지갑을 채운 적 없이,
수채화에 한 십여 년, 판화에 십여 년, 어영부영 한 십여 년 허송세월하고,
다시 마음을 다잡고 영월에 정착하여 ‘牛舍’ 손보고 그림을 시작한 지 십여 년, 얼핏, 거울을 보니 정수리에는 서리가 허옇고 이제, 버리는 연습을 할 나이에 여전히 살기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즐기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.

적막한 오솔길 끝자락 쯤, 외딴 주막, 후덕한 아낙이 바가지로 퍼주는 막걸리 한 사발에 마른 목을 축이고 되돌아보니, 주막은 흔적 없고 가랑잎 쌓인 옛터에 한줄기 가을바람이 스쳐지나갑니다.

그립다. 자취 없이 사라진 것들이-

둔재의 무딘 손길에 피곤해진 그림들, 자작나무 숲 향기 속에서 한동안 안식을 찾게나.
터를 마련해주신 ‘미술관 자작나무숲’ 관장님께 감사드립니다.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
2013년 6월    최  건  홍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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